콘텐츠 맛집 왓챠에서 내 취향의 작품을 하나 소개해주어 영화 <리틀 조>를 보게 되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꽃'이라는 독특한 소재부터 벌써 구미가 당겼다. 워낙 SF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왓챠 코멘트 중에 '란티모스' 감독 스타일이라는 글이 있어서 대략 어떤 분위기의 작품일지 예상하고 보았다.
오늘은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에밀리 비첨 주연의 영화 <리틀 조>를 리뷰해본다.
인간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만드는 꽃, 리틀조
주인공인 앨리스(배우 에밀리 비첨)는 유전자 공학 기술을 통해 새로운 식물 종을 개발하는 '육종인'이다. 영화는 꽃 박람회에서 처음 공개할 빨간 꽃을 앨리스가 소개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생식 기능은 없지만 '옥시토신'을 분비하는 이 꽃은 인간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모성애의 감정을 형성하여 꽃을 기르는 인간이 꽃을 자식처럼 여기게 된다고 한다.
언뜻 들어서는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오히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꽃은 혁신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탄생 목적 자체가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이러한 꽃을 만들어 낸 앨리스를 시기하기도 하고, 어떤 벡터(바이러스)를 사용했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앨리스는 자신만만하다. 앨리스는 이 꽃을 아들인 '조(Joe)'에게 선물하는 의미로, '리틀 조(Little Joe)'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제가 의도한 행복은 이게 아니에요"
그러던 어느 날, 플랜트 회사의 동료 직원 '벨라'의 개 '벨로'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인은 물론이고, 사람들을 잘 따르던 강아지가 하루 아침에 주인을 못 알아보는 완전히 다른 개가 된 것. 겉모습은 분명 내 강아지인데, 주인을 못 알아보고 심지어 물기까지 한다. 직원 벨라는 자신의 개를 너무 사랑하지만, 자기가 알던 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강아지가 되었다며 눈물을 머금고 벨로를 안락사 시킨다. 그리고 저녁에 벨라는 리틀조를 개발한 앨리스의 집으로 찾아온다. 리틀조의 꽃가루가 자신의 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면서.
앨리스는 이런 동료의 말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벨라는 호흡기를 통해 들어간 바이러스가 뇌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부분을 손상시킨다는 학술지의 자료를 가져와 설득하지만, 앨리스는 그저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의 하소연 정도로만 치부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서 리틀조를 키우는 아들 '조'도 언젠가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엄마 껌딱지처럼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다정다감하게 대화상대가 되었던 아들은, 어느 날부터 혼자 밥을 먹고 앨리스가 불러도 반응이 거의 없다.
플랜트 회사에서 앨리스의 파트너 직원인 크리스도 마찬가지다. 동료 직원들은 크리스가 리틀조를 '자식처럼' 돌보고 아낀다고 말한다. 앨리스가 리틀조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행복과 모성의 감정은 어딘가 이상하고 뒤틀린 방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술 만능 뒤에 숨어 있던 인간 종의 무력함
영화 <리틀 조>는 과학과 기술 만능주의를 통해 실현한 '인위적 행복감'이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어그러지는 과정을 기묘하고 이질적인 연출 방식으로 보여준다.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는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말한 적 있다([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결산⑥] <리틀 조>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이 영화를 통해 진실의 다른 측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길”). 인터뷰에서 하우스너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왜 행복해지고 싶어 할까? 나는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완벽에 대한 추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행복과 완벽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영화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행복해지길 바라는 사회의 어떤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영화 <리틀 조>는 결국 과학과 기술을 통해 '완벽한 행복'을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이 자연 앞에서 어떻게 꺾이는지 보여준다. 생물의 본능인 생식 기능을 인간의 마음대로 제거하고, 오직 인간의 행복 추구를 위해 인위적으로 옥시토신을 뿜어내도록 '설계된' 꽃을 정말 '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리틀조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꽃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인간 손으로 빚어낸 독극물과 다를 바가 없다. 리틀조는 생식 기능이 제거되었지만, 자연의 본성을 향해 가기 때문에 꽃가루를 과도하게 분비한다. 공기 중에 발산된 꽃가루는 인간의 호흡기로 들어가, 인간의 감정을 점차 잠식해버린다. 생식 기능 없이도, 꽃가루를 들이마신 다른 객체에 의해 리틀조는 보호된다. 기술 만능 사고에 기댄 인간 종이 사실은 자연 앞에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영화는 다시 한 번 꼬집고 있다.
또한 리틀조를 개발하는데 주력한 인간 앨리스가 자신이 만든 꽃으로 인해 갈등하고, 주변 인물로부터 윤리적 질문을 받다가, 끝내 그 자신도 꽃가루에 감염되어 버린다는 것은 모순적이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면서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많은 앨리스는 모성과 일에 대한 개인적인 성공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등해 온 인물이다. 이는 리틀조가 인간에게 주는 행복의 방식을 결정하지만(옥시토신 분비를 통한 모성애 자극), '완벽한 행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방식에는 답이 없다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가스라이팅 당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그린 미스터리물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사실 리틀조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공적으로 개발된 리틀조가 실제로 인간의 뇌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지 아닌지는 영화가 끝나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중한 강아지를 잃은 동료 직원 벨라의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영화는 '리틀조는 인간의 뇌에 문제를 일으킨다'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간의 대립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포인트는 영화가 결말을 향해 갈수록, 리틀조의 무시무시한 부작용에 대해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줄어든다는 것에 있다.
리틀조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앨리스의 주장은 점점 소외된다. 꽃가루를 들이마신 아들 '조'와 그의 여자친구, 파트너 직원 크리스, 앨리스를 견제했던 다른 직원들 모두가 마치 짠 것처럼 앨리스에게 다가와 말한다. 리틀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마치 리틀조의 부작용이 별 것 아니며 그것은 과대한 망상에 불과하다는 듯, 앨리스는 사춘기 아들에 지쳐 감정기복이 심해진 유별난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결국 리틀조를 자기 손으로 폐기하고자 아무도 없는 밤에 온실에 들른 앨리스는 동료 직원 크리스와 맞딱뜨린다. 크리스는 앨리스와 몸싸움 끝에 그녀를 쓰러뜨리고, 마스크를 벗겨 꽃가루를 강제로 마시게 만든다. 리틀조가 자신의 강아지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끝까지 주장하던 벨라도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다가, 의문의 추락사를 당한다. 이에 대해 동료 직원들은 그녀가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이라며, 급히 애도를 마치고 꽃 박람회에 집중하자며 화제를 돌려버린다. 나 빼고 모두가 나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가스라이팅 상황에서, 앨리스는 무엇이 진짜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 한다.
가스라이팅을 소재로 다룬 심리 스릴러는 사실 많다. 이전에 포스팅한 영화 <인비저블맨>이나 <스왈로우>도 가스라이팅을 오랫동안 당한 피해자의 심리를 다룬 작품들이다. 그런데 영화 <리틀 조>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스크린이 올라가는 마지막까지 우리는 앨리스가 당한 것이 정말 가스라이팅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왓챠 코멘트를 보면, 결말을 알면 리틀조가 정말 문제를 일으킨 게 맞는지 알 수 있을 줄 알았다는 후기가 꽤 많다(영화는 열린 결말이다).
앨리스가 정말 괴물을 개발한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게 앨리스의 주변 인물들 말마따나 '감정기복에 따른 망상'인지 마지막까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앨리스의 관점에서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하면서, 관객마저도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영화 <리틀 조>. 영화를 끝까지 다 본 관객 중 하나인 나로서는, 주인공인 앨리스가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믿고 있다.
기괴한 사운드와 카메라 기법, 아름다운 프로덕션 디자인
영화 <리틀 조>는 독특한 스토리 라인 외에도, 개성 있는 사운드와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영화의 시작부터 흘러나오는 동양풍의 형용하기 어려운 사운드에는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사운드를 활용하여 꺼림직하고 기괴한 느낌을 내려는 감독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찝찝했고, 특히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을 무렵 등장한 사운드에는 이상한 사람 소리도 섞여 있어서 무섭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음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아, 퀄리티를 논할 수는 없지만 영화 <리틀 조>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제격이었다고 본다.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킬링 디어>를 생각하면 된다. 아래 트레일러에서 사운드를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사운드와 더불어, 영화 <리틀 조>의 독특하고 기묘한 느낌은 카메라의 인위적인 시선 변화에서 만들어 진다. 영화 <리틀 조>는 앞서 말한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게 그려내어 관객에게 거북한 감정을 들게 만든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카메라 기법이다.
영화 <리틀 조>는 특히 2명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어느 한 쪽 인물의 얼굴을 가까이서 잡기 보다는, 두 인물의 사이를 초점으로 맞춰 보여주는 시선이 많다. 때문에 등장인물의 감정 한 명 한 명에 집중하기 어렵고 두 인물이 대화하는 장면을 연극의 한 장면처럼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스토리 라인에 따라, 관객은 두 인물 중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집중해서 찾아내야 하는데 충분한 단서를 얻을 수 없도록 일부러 카메라가 멀리서 잡는 느낌이다. 이는 영화를 더욱 더 인위적이고 작위적으로 조작된 이야기 같은 인상을 준다.
이외에도 녹색을 바탕으로 비비드(Vivid)한 컬러들이 다양하게 활용된 의상 및 소품도 눈길을 끌었다. 앨리스를 포함한 플랜트 회사 직원들의 유니폼은 옅은 녹색이다. 앨리스가 개발한 꽃 리틀조의 색깔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빨간색이다. 앨리스의 밝은 머리색과 어우러지는 주황색, 청록색, 핑크 계열의 의상들은 영화의 전반적인 색감을 초현실적이면서도 작위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시각적으로는 아름답지만, 인물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모순이 더욱 극대화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은 영화 <리틀 조>만의 독특한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 "초현실적인 미술 세팅이 필요했다. 나는 항상 스타일리시하고 인위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상 역시 에밀리가 앨리스 역을 맡기로 했을 때 그녀의 머리색과 조화를 이루는 의상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앨리스가 꽃가루를 들이마시고 나서 정말 행복해진 것이 맞는지 아직까지도 궁금하다. 아들과 남편에 대한 아픈 감정은 쉽게 정리되고, 개발한 인공 꽃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갈등 상황이 해소되면서 찾아온 자연스러운 행복과 안정인지, 리틀조가 만들어준 인위적인 착각인지 관객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고 다 자신의 착각이었다 말하는 앨리스에게 상담사는 이렇게 물어본다. "애초에 그걸 믿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관객이 하고 싶었던 질문에 앨리스는 '어쩌면 진정 마음 속으로 바랐었는지도 모른다'라는 말로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바랐었는지 알지 못한다. 앨리스가 생각했던 완벽한 행복의 모양이 이 영화의 결말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관객들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우리도 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들을 꽤 자주 만날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말하는 행복'이 사실은 나도 바랬던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여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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