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중에 재미있는 프랑스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엘레오노르 푸리아(Éléonore Pourriat)' 감독의 '거꾸로 가는 남자(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 나는 헤픈 남자가 아니야)'이다. 성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1시간 30분 분량의 영화인데, 유쾌하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고 배우들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기도 매력적이라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오늘은 넷플릭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를 리뷰하기 전에, 엘레오노르 감독의 이전작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억압받는 다수(Majorité opprimée)'라는 단편영화를 먼저 리뷰해볼까 한다. 유튜브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고, 10분 분량으로 매우 짤막하다.
우리 딱 10분만 성별을 바꿔봅시다
엘레오노르 감독의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는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을 뒤바꾼 대표적인 성반전 영화로,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인 2010년에 제작 및 공개되었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주된 직업만 바꾼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말과 행동을 모두 카피하여 뒤바꾼 것이 특징적이다. 예를 들면, 남자 주인공(배우 피에르 베네지, Pierre Benezit)이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거리를 걷는데 웃통을 벗고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여성들이 조깅을 하고 있거나, 아파트에서 만난 어떤 아주머니가 '아 이런 건 사실 새댁 와이프한테 말해야 하는데...'라며 아예 특정 주제에서 성별로 배제를 시키거나, 히잡을 쓴 남성이 집에서 아이를 보는 등. 사소한 성 고정관념 하나 하나를 살린 연출이 이 영화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남자 주인공이 아이를 돌보고, 하루동안 아내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자 양아치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경찰서에 가서 피해자로 조사를 받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하지만 그 하루동안 이 남성이 경험하는 크고 작은 성차별은 가히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양아치 여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와중에 남자 주인공이 치는 대사 중 이 말은 정말 많은 것들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냥 보내주세요... 제발요. 오늘은 남성의 날이잖아요(Let me go... please. It's Men's Day)."
가해자에겐 너그럽고 피해자에겐 엄격한 이중잣대
그렇게 성폭행 피해를 입고 경찰에 진술을 하러 온 남자 주인공은 경찰서에서조차 의심을 받는다. "대낮에 뻥뚫린 길에서 목격자도 전혀 없고... 이상하네요(Broad daylight, no witness... interesting, huh?)." 이 여자경찰이 하는 말의 의미는 누구나 알고 있다. '당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거, 사실 지어낸 거 아니야? 누가 증명해줄 건데? 증거도 마땅치 않은데 범인을 잡는 게 의미가 있을까?' 가해자에게는 너그럽고, 반대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던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카피하여 꼬집는 장면이다.
그리고 관객의 머릿속에 '주인공이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하루종일 와이프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무렵, 미팅이 많아 바빴다는 주인공의 아내가 경찰서에 나타난다. 아내는 다친 남편을 걱정하는 듯 말하지만, 절뚝이며 욕을 하고 투덜대는 남편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쳐다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내와 함께 걷던 남편이 말한다. "이런 x같은 여성 중심 사회를 더는 용납하기 힘들어!(I can't take this fucking feminist society anymore)" 남편의 짜증과 푸념을 듣던 아내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응수한다. 그리고는 남편의 옷차림을 탓한다. "나야말로 당신의 그 말도 안 되는 '남성주의 사상'은 이제 그만 듣고 싶어. 당신 지금 옷차림을 좀 봐!(I can't stand your masculinist nonsense! Look at the way you dress!)"
상상은 고작 10분, 판타지는 끝나고 현실은 계속된다
감정을 좀 추스리라며 남편을 경찰서 앞에 두고, 아내가 차를 가지러 가는 길. 11분 간의 짧은 러닝타임이 막바지를 향해가면서 성반전의 판타지는 종료되고, 비로소 현실이 시작된다. 아내의 흰 원피스 자락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하며 여성의 굴곡 있는 몸을 훑는 장면은 어느새 남성의 시선을 대변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남편이 유모차를 끌며 길거리에서 들어야 했던 성적인 농담들은 이제 여성에게 쏟아진다. 뒤를 힐끗거리며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홀로 걷는 아내의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1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남성과 여성이 완전히 뒤바뀐 사회를 관객의 눈으로 지켜보면서, 디테일을 살린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에 놀랐다. 여성조차도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의 말과 행동들을 감독이 정확하게 캐치하고 빠짐 없이 담아내려 노력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요즘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육아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직장에서 칭찬이라면서 여성의 외모를 딱 집어 언급한다든지, 캣콜링(우리나라는 많지 않지만 유럽엔 정말 만연하다...), 경찰서 같은 특정 직업 안에 성별의 편차가 심한 점, 히잡을 쓴 여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사회의 다양한 지점들을 성별만 바꿔 그대로 묘사하여,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들이 사실은 이상하고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된, 많은 여성의 일상을 대변하는 이야기
특히 아내 캐릭터에 대해 감독은 '다른 성별의 입장을 상상하거나 공감할 수 없도록' 의도했다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 있다. 더불어,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스토리라 밝히기도 했다. "저는 그녀가 상상하지도, 공감하지도, 남편이 느끼는 걸 똑같이 느낄 수도 없길 바랐습니다. 여성이 성추행을 당할 때, 사람들은 그게 여성의 잘못이라 말합니다. 심지어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조차도요. 그것이 제가 아내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지점입니다(I wanted her not to imagine, not to sympathise, not to be able to feel what he feels. So often when women get assaulted, people say it's their fault. Even close people. That's what I wanted to say with this chara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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