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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작품들

넷플릭스 드라마 '필굿(Feel Good)' 리뷰 : 우리에겐 레즈비언의 연애 서사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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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퀴어 장르의 영화를 찾아보곤 한다. 사랑의 서사가 꼭 남녀로만 이루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퀴어 로맨스 중에도 정말 좋은 작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넷플릭스에서 '필굿(Feel Good)'이라는 드라마를 꾸준히 내게 추천해주었는데, 처음에는 일반 로맨스물인가 싶어 넘겼다. 그런데 줄거리를 살펴보니, 레즈비언 로맨스 드라마였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나 '캐롤'같은 여성과 여성의 로맨스를 담은 영화는 많았는데, 드라마로 레즈비언 연애 서사를 중심으로 다룬 작품은 사실 처음 보았다. 물론, 내가 모르는 드라마도 많겠지만은... 국내에 서비스되는 작품 중에는 레즈비언 연애 서사가 중심인 드라마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image from filmaffinity

 

하던 모든 일을 치우고(?) '필굿(Feel Good)' 정주행을 시작했다. 드라마 '필굿'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즌 2까지 스트리밍으로 만나볼 수 있다.

 

 

필 굿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메이 마틴. 인생도 새롭고 즐겁게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여자 친구 조지와의 관계는 복잡하고, 중독 치료는 지긋지긋하다.

www.netflix.com

 

스탠드업 코미디언 메이 마틴의 자전적 드라마

'필굿'은 영국의 Channel4에서 2020년 3월부터 방영을 시작해 현재는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시즌 2까지 나온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이다. 주연 배우는 '메이 마틴'역에 '메이 마틴(Mae Martin)'이, '조지' 역에 '샬럿 리치(Charlotte Ritchie)'이다. 메이 마틴 역에 메이 마틴이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싶은데... 이 드라마는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메이 마틴의 자전적 드라마이다. 그는 배우와 작가, 제작자로서 드라마 '필굿'에 참여했다. 실제로 과거에 3년 반가량 만났던 여자친구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한 드라마라고 한다. 

 

image from Decider

 

자전적 드라마이기 때문에 작품 속 메이 마틴의 직업 역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동네의 작은 극장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매일 저녁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 메이의 코미디 공연 맨 앞 자리에 앉아 오직 '조지'만 웃어준다. 이런 조지에게 메이는 반하지만, 본인의 초라한 모습에 플러팅을 할 기회조차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지 또한 메이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었고 이들은 공연이 끝난 뒤, 바(Bar)에 마주 앉아 곧바로 서로에 대한 호감을 교환한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이들의 연애는 속전속결로 시작된다.

 

드라마 '필굿'의 대표 장면. 너무 예쁘게 그려졌다.

 

평생 이성애자였던 여성이 어느 날 동성 연애를 시작한다면?

드라마 '필굿'은 메이와 조지가 서로 밀당하는 내용을 다루는 게 아니라,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 상황들을 메이&조지 커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준다. 일례로 작품 속에서 메이는 퀴어로 커밍아웃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 모두를 만난 경험이 있다. 특히, 여자는 많이 만나본 편으로 나온다.

 

 

반면, 조지는 보수적인 영국 백인 친구들과 유년 시절을 쭉 보내왔고, 여자를 만난 건 메이가 처음이다. 평생 이성애자로 살았던 여성이 하루 아침에 동성 연애를 시작한다면? 게이나 트랜스젠더를 농담거리로 삼는 보수적이기 짝이 없는 가족과 친구들, 혹은 본인이 근무하는 직장(학교)에 여자친구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물론 메이에게도 고민이 있다. 바로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권유로 마약을 시작해, 끊었다가 손댔다가를 몇 년 째 반복하고 있다. 마약에 손댄 후 비행청소년으로 살았던 몇 년 간 부모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던 이력이 있다. 여자친구에게는 이 사실을 숨기고 싶지만, 주책 맞은(?) 엄마의 발언으로 조지는 메이가 마약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과거에 마약 중독자로 범법 이력이 있다면, 이 사람을 예전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 과거의 습관을 찾아내진 않을까?

 

마약중독자 치료 모임에 함께 참석한 조지와 메이

 

드라마 '필굿'은 이처럼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서로의 성장 배경, 가정사, 친구들, 편견, 가치관 그리고 사소한 습관까지... 메이와 조지가 서로의 진짜 생각을 알아가면서 충돌하고 실망하고, 그럼에도 다시 이해하려 노력하는 연애 스토리를 담고 있다. 어쩌면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마약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성장 과정을 드라마 '필굿'이 자연스럽게 잘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시즌 1에서는 이성애자였던 조지가 메이의 존재를 친구나 가족들에게 인정하지 못해 갈등하는 상황과, 그런 조지로 인해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메이가 코카인에 다시 손을 대는 이야기가 메인이다. 

 

 

우리에겐 레즈비언의 연애 서사가 더 필요하다

이전에는 레즈비언의 연애를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로 다룬 작품을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미장센이 아름다운 영화 속에서 진지하고도 짧게 스쳐가는 연애 스토리 중 하나로만 다뤄져 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았을 뿐더러, 실제로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 과정을 다루기 보다는 몇 번의 성관계를 비추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 '필굿'에서 내가 새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레즈비언의 연애 서사도 헤테로섹슈얼의 연애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 인간적으로 그려냈다는 데 있다.

 

 

메이나 조지가 하는 연애는 내가 여태껏 봐왔던 퀴어 영화에서 그리던 연애보다 훨씬 더 소소하고 일상적이고, 동시에 사랑스럽다. '캐롤'이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여성 간 연애를 더 평범하고 알콩달콩 그리지 못한 이유에는 물론 그 작품들이 그리는 시대적 배경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명화 속에 고고하게 박제해놓은 것 같은 레즈비언 연애는 이제 그만 봐도 되지 않을까? 연애란 원래 아름답게 소장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가슴 뛰면서도 동시에 다 망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인간적인 경험의 총합에 가까우니까... 레즈비언의 연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메이 마틴의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ooraymae/

 

P.S. 해당 리뷰에서 '필굿'은 레즈비언의 연애 서사라고 보았지만, 메이 마틴은 극중에서, 그리고 실제로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다. 그는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스스로의 젠더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지만, 현재는 논 바이너리 바이섹슈얼이라고 밝힌 적 있다(I’m nonbinary, my pronouns are they/them and she/her (...) I’m very bisexual and attracted to people of all ge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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