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스를 봤는데,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아프간에서는 이제 여자 아이들을 교육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여자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있었던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에서 이유 없이 해고되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오랜 시간 힘겹게 일궈온 여성 인권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런 와중에, 2년만에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를 다시 보았다. 처음에 영화를 보고 개인 브런치에 올린 적이 있는데, 2번째로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업데이트 해보려 한다.
성반전 영화인데,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
넷플릭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는 웃음기를 싹 뺀 성반전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MAJORITÉ OPPRIMÉE)>로 우리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했던 엘레오노르 푸리아(ELÉONORE POURRIAT)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성반전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 작품을 하다니, 뭔가 이상한 것 같지만 이번에도 소재는 페미니즘이다. 1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의 '억압받는 다수'가 진지한 성반전 영화의 맛보기였다면, 넷플릭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는 1시간 30분 분량의 장편이다. 유머러스함이 가미되어 '억압받는 다수'보다 훨씬 편안하고 유쾌하게 시청할 수 있지만, 엘레오노르 감독 특유의 디테일한 성반전 묘사는 말할 것도 없이 현실을 충실하게 비판한다. 특히 여성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부조리를 남성이 소수자가 된 상상의 사회에서 이질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프랑스 원제는 '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로 '나는 헤픈(쉬운) 남자가 아니야' 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반면 '거꾸로 가는 남자'라는 한국판 제목은 영화의 전반적인 맥락을 요약하듯 표현한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아마 제목만 보고 내용을 짐작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어느 날 갑자기 여성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 떨어진다면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의 줄거리는 크게 2개의 세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의 도입부는 우리가 모두 살고 있는 보통의 세계이다. 여성 편력이 심하고 가부장적인 사고에 빠져 사는 남자 주인공 '다미앵'이 평소 어떤 남성인지를 보여주는 몇 가지 장면이 나열된다. 남성의 섹스 횟수와 성기능 수준(?)을 기록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다미앵은 여성을 사냥과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남성우월주의, 마초 캐릭터다. 회사에서, 서점에서, 카페에서, 자리를 막론하고 여성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여성을 위하는 척 사실은 성희롱을 일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크리스토프와 길을 걷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크게 부딪히고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180도 바뀌어 버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성이 기득권이 되는 여성우월주의 사회로 넘어온 것이다.
여성이 기득권인 사회, 다미앵이 알던 세상과 모든 것이 반전된다. 사회의 전문직이나 핵심 일자리는 모두 여성의 차지이며, 남성은 그저 남성이라는 이유로 배제 당하기 일쑤다. 회사에서 커피를 타오는 것도 남성, 외모에 신경 쓰며 엉덩이에 뽕을 넣는 것도 남성, 과학자는 여성이 대부분이라 업적을 세운 '남성 과학자'는 잡지의 표지모델을 장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육아휴직을 얼마큼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사람도 남자다.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동안 공고하게 쌓아 올린 남성이 디폴트인 사회에서 이 영화가 바꾼 것은 오직 성별 하나뿐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모든 것이 새롭고 이상해 보인다. 여성에겐 당연했던 현실이 남성의 관점으로 바뀌니 '왜?'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다미앵 또한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하다가, 여성이 우월한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남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코르셋을 하나둘씩 입기 시작한다. 회사에서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프로젝트에서 밀리게 되고, 항의를 하다가 부당 해고까지 당한다. 일자리 없이 친구 집을 떠돌던 다미앵은 유명 작가인 '알렉산드라' 집의 개인 비서로 취직하게 된다. (알렉산드라는 다미앵이 원래 알던 세상에서는 유명 남성 작가의 비서였다. 전세가 역전된 것.)
'나는 쉬운 남자가 아니야'
남성이 중심인 사회에서는 알렉산드라가 유명 작가의 비서였지만, 뒤바뀐 사회에서는 다미앵이 알렉산드라의 비서가 되어 그의 집을 청소하고 서류 작업을 담당한다.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낸 작가이자 남성 편력이 심한 알렉산드라의 눈에 들어 그의 집에서 근무하게 된 다미앵은 어느새 알렉산드라의 비서인 동시에 애인이 된다. 자신이 살던 기존의 가부장적인 세계를 그리워하는 다미앵으로부터 작가인 알렉산드라가 다시 영감을 받고, 그걸 토대로 '나는 쉬운 남자가 아니야'라는 원고를 써낸다는 스토리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언제나 여성들이 남성 예술가들의 뮤즈로 등장했다는 점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센스 있게 비꼰 설정인 것 같다.
여성 중심적인 세계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서게 된 다미앵은 남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시위에 직접 나서고, 출산 후 아내로부터 냉대를 당하고 있는 친구에게 스스로를 꾸미고 가꿔보라는 뼈 아픈 조언을 하기도 한다. 시위에 나선 남자들에게 '내가 남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는 내 남동생과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외치며 조롱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야릇하면서도 동시에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유방이 권력의 상징인 사회에서 다미앵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오는 사이 달라진 건 성별 하나뿐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면 감독의 의도에 맞게 우리는 영화를 따라가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괴한 영화가 우리가 지금 딛고 서 있는 세상의 절반이 일상적으로 겪어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걸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면, 감독은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걸까.
꿈 같은 세상에서 차가운 현실로
머리를 심하게 부딪힌 다미앵이 우연히 여성우월주의 사회로 발을 들이게 된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격 설정을 지닌 이 영화가 끝을 맺으려면, 다시 이들을 원래의 세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무방비 상태로 성희롱을 당하고 있던 다미앵을 구하려던 알렉산드라는 싸움을 말리던 도중, 다미앵과 함께 머리를 크게 부딪히고 이 '꿈같은 세상'으로 다미앵을 데려왔던 앰뷸런스에 우연히 탑승한다. 영화를 보던 나는 부디 알렉산드라가 이 세계를 벗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감독은 알렉산드라의 앰뷸런스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내려준다. 알렉산드라가 생경한 눈으로 목격하게 된 반대쪽의 세상은 우리에겐 결코 생경하지 않은 지금의 사회. 남성이 디폴트가 되고, 오랜 시간 여성의 동등한 삶과 권리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싸워야 했던 지진한 세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눈을 한 알렉산드라가 발을 내딛는 장면은 영화에 몰입했던 시청자들에게 끔찍할 정도로 현실적인 기시감을 전해준다. 그리고 페미니즘 시위대의 틈바구니에서 알렉산드라가 다미앵과 조우하며,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성역할이 반전된 비현실적인 사회상을 보여주다가 현실세계로 돌아와 결말을 맺는 구조는 엘레오노르 감독의 이전작 '억압받는 다수'와 유사했다. 다만, '억압받는 다수'는 남편에서 아내로 시점이 이동되는 단순한 플롯이라면, '거꾸로 가는 남자'는 영화 속에 가부장제 사회와 가모장제 사회를 평행우주처럼 각기 다른 차원의 세계로 존재토록 하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동일한 등장인물을 토대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와 여성 중심적인 사회 각각을 모두 경험시켜주려고 한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다.
하지만 다미앵이 살아가던 가부장제 사회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인지, 알렉산드라가 주인공이 되는 여성 중심 사회는 '거꾸로 가는 남자'라는 영화 속 또 다른 영화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남성이 디폴트인 사회와 여성이 중심인 사회가 동일한 무게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의 한계는, 아니 우리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의 한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세계에서, 알렉산드라의 세상은 그저 상상이나 영화로 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슬픔이 우리에게 내려앉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위 내용까지가 이전에 개인 브런치에 작성해두었던 리뷰이다. 이번에 '거꾸로 가는 남자'를 두 번째 시청하면서, 결말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알렉산드라가 현실 세계로 넘어와 페미니즘 시위대를 거리에서 만나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우울하지만, 그 틈바구니에서 손을 흔드는 다미앵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억압받는 다수'에 비해 훨씬 희망적인 결말이다.
다미앵은 남성이 디폴트인 지금의 세계와 여성이 디폴트인 세계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첫인상은 재수 없었지만, 알렉산드라의 세상에 적응하며 알렉산드라를 사랑하게 된 사람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어느 한쪽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양쪽 모두의 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쪽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느 사회에서건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불평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으니까(여성이 디폴트인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세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남녀가 힘을 합칠 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성반전을 경험시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 결말, 조금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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