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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작품들

※스포있음※ 정우성 기획 공유 배두나 주연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The Sea of Tranquility)' 솔직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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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SF장르에 있어서 한국은 불모지이다. 소설은 텍스트 기반이기 때문에 별다른 기술력 없이 오직 상상력만으로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를 구현하는 게 가능하다. 반면, 드라마나 영화는 시각적 결과물을 통해 SF적 상상력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 들어가는 예산도 만만찮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활용되는 수준도 훨씬 높아야 하므로 오래 전부터 한국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SF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2021년 12월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가 공개되었다.

 

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지도 모르는 '대가뭄' 시대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인류의 필수 자원인 '물'이 희박해진 '대가뭄' 시대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연간 평균 감소량이 매년 최저치를 찍고, 전 세계 물의 양이 10년 안에 40% 감소할 것이라 전망되는 최악의 시기. 대가뭄으로 몇 년 째 사람들은 사회적 등급에 따라 물을 배급받으며 고통 속에 산다. 물이 부족하니 아픈 사람이 많아지고,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이들은 어린 아이들과 반려동물이다.

 

이러한 최악의 시대를 국가적 차원에서 타개하기 위해, 우주항공국장과 자원팀 과장은 달에 대원들을 보내 필요한 샘플을 지구로 가져오는 미션을 완수하고자 한다. 이러한 미션에 필요한 인력으로 동원되는 인물이 동물행동학자이자 우주생물학자인 송지안(배두나)과 탐사 대장 한윤재(공유)를 포함한 8명의 대원들이다. 그런데 숨기는 게 워낙 많은 우주항공국은 이들에게 지구로 가져와야 하는 샘플이 정확히 무엇인지(어떤 성분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미션만 주고 그들을 달로 보낸다.

 

이와중에 보이는 'K-WATER' 깨알 현실반영이다 (image - imdb)

 

'고요의 바다'가 시작되는 '대가뭄' 세계관은 초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평소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물이 국가 위기 수준으로 부족해질 때 생겨나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까지 초점을 맞춰 다룬 작품을 이전에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에피소드 1화-2화는 앞으로 펼쳐질 사건에 대한 빌드업(Build-up) 차원에서 '대가뭄'이라는 설정을 꽤나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 드라마의 후반전까지 끈기 있게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달'이라는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고요의 바다'가 정말 재밌는 구간은 에피소드 3화부터 5화인 것 같다. 사고로 엉망진창 착륙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달에 도착한 대원들이 발해기지에 입성해 이상한 일들을 겪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고요의 바다'는 SF라는 겉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미스터리 스릴러에 훨씬 더 가깝다.

 

image - imdb

 

폐쇄적이면서도 미지의 공간인 달. 그곳에서 한윤재 대장을 포함한 대원들은 처음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발해기지의 통신을 복구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나간 이전 발해기지 대원들의 시체를 확인하면서 긴장감에 휩싸인다. 분명 우주항공국에서는 방사능 피폭으로 대원들이 죽었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한 발해기지는 방사능 수치가 정상이다. 그러다 부조종사 '기수'와 대원 '수찬'을 시작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을 차례차례 겪어나가며, 완전한 패닉에 빠진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image - imdb

 

특히, '월수(달에서 발견된 물)'에 접촉한 사람들이 몸속에 무분별하게 증식한 물에 의해 익사한다는 설정은 그 상상력이나 비주얼 측면에서 모두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주항공국에서 가져오라고 했던 샘플을 찾다가 월수에 접촉하게 된 '수찬'이 끊임 없이 입으로 물을 쏟아내고 그의 몸속의 혈액이 모두 물이 되어버리는 장면은 '고요의 바다'가 평범한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미스터리 스릴러로 넘어가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image - imdb

 

특히 대가뭄으로 모든 땅이 사막화 진행 중인 지구와, 바이러스로 물에 빠지지 않고도 익사할 수밖에 없는 달이라는 두 배경이 가진 대조적인 성격은 이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것 같다. 발해기지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드라마의 초반에 어떤 힌트조차 주어지지 않다가, 월수가 가진 힘과 부작용이 서서히 공개되면서 발해기지 대원들이 어떻게 떼죽음을 당했는지 추리해나가는 재미도 있었다. 

 

괴물의 정체, 루나 073이 시사하는 바

월수가 지구상의 일반적인 물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인간의 몸과 반응하면 증식)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박사(배두나)는 발해기지 대원들의 죽음이 방사능 피폭이 아닌 월수였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발해기지에서 과학자로 월수에 관해 연구했던 본인의 친언니 송원경 박사에 관한 기록을 샅샅이 찾는다. 그러던 중 본인과 대원들을 위협했던 괴물의 존재가 사실은 실험체 인간이자 어린 아이였던 '루나(Luna)'라는 걸 알게 된다. 

 

'루나', 정확히는 '루나073'은 지구에서 온 대원들과는 달리 월수에 의해 죽지 않는 인간이다. 그런데 이 인간에게 붙은 이름 뒤의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빠르게 움직이며 사람을 공격하는 루나 역의 김시아 배우. 연기 잘한다. (이미지 출처 : 네이트뉴스)

 

바로, 루나073 이전에 이미 72명의 다른 루나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 대가뭄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해결한다는 미션을 안고 달에 왔던 발해기지 대원들은 월수를 인간이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인간의 몸에서 무한정 증식하지 않도록)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한다. 그래서 결국 이들이 택한 건, '인간의 몸을 월수에 적응시키는 것'. 발해기지 대원들은 실험체로 사용할 어린 인간들을 데려다가 월수에 대한 생물학적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약 70번의 테스트를 거쳤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최초의 인간 루나073을 발견했고, 그 연구를 주도했던 박사가 바로 송박사의 친언니 '송원경' 박사였던 것이다.

 

홍닥 역의 김선영 배우, 의사 역할로 나오니 새롭고 좋았다 (image - imdb)

 

루나073의 등장은 '고요의 바다' 특유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분명히 일조했다. 하지만 괴물 같던 루나073이 과학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무분별한 실험을 진행했던 발해기지 대원들의 희생양임이 밝혀지면서 급속도로 이야기의 진행이 늘어지는 감이 아쉬웠다. 물론, 과학만능주의가 빚어낸 대가뭄이라는 재난을 다시금 과학으로 해결하려했던 지극히 인간 이기주의적 시각을 비판하려는 기획 의도는 잘 보여주었던 것 같다.

 

후반으로 갈수록 과학적 고증이 아닌 감성으로 해결

루나073을 비롯해 발해기지 대원들이 벌인 비인간적 실험은 국가 입장에서는 절대로 밝혀져서는 안 될 비밀이었고, 이 때문에 발해기지 대원들은 예고 없는 떼죽음을 당했다. 물론 루나073의 존재도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상황.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우주항공국장과의 의견차를 뒤로하고, 일단 송지안 박사와 의사 홍닥, 한윤재 대장은 루나를 데리고 살아남은 사람들만이라도 물로 가득차고 있는 발해기지에서 탈출하기로 한다.

 

image - imdb

 

그런데 루나의 비밀과 우주항공국에서 감추려했던 사실이 무엇인지 완전히 공개되면서, 오히려 이야기의 전개는 루즈해진다. '고요의 바다' 에피소드 7화와 8화는 주인공들이 이유 없이 길게 고민하고 감성에 젖은 대사를 많이 쳐서 정말 아쉬웠다. 특히 드라마 초반에는 냉철하고 임무 완수밖에 몰랐던 한대장(공유)이 점차 송박사(배두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더니(그것까진 좋다), 대원 전체의 안전한 탈출보다는 루나를 더 신경 쓰는 모습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도 공유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픈 딸을 가진 아버지로 나왔는데, 딸에 대한 비하인드를 에피소드 몇몇에서 자주 비추더니 나중에는 루나073과 딸을 동일시하며 대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월수에 다 익사해 죽게 생긴 마당에, 탐사 대장으로서 빠른 판단을 너무 못하는 건 아닌지 답답했다.

 

image - imdb

 

송지안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많이 아쉬웠다. '고요의 바다'는 홍닥(의사) 역에 김선영 배우, 우주생물학자 역에 배두나 배우가 연기했는데, 남성이 대부분 중심이고 여성은 1명 정도였던 기존의 SF 작품에 비해서는 새로운 캐스팅(?)이라고 생각은 했다. 다만, 배두나가 연기하는 과학자라는 인물이 지나치게 여성성에 치우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국가적 임무나 조직 전체보다는 본인의 가족인 언니의 죽음을 더 우선으로 두고, 대원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루나073을 보듬기 위해 조직에서 이탈하는 등의 모습은 동물행동학자라는 백그라운드나 가족 이야기를 감안하더라도 도저히 이입하기 어려웠다. 배두나의 극중 역할이 과학자라면, 이야기의 전개상 감성팔이보다는 과학적인 고증을 보다 탄탄하게 만드는 역할로 활용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image - imdb

 

이외에도 '고요의 바다' 결말을 두고 많은 이들의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SF로 시작해 감성으로 끝나냐는 평이 대부분인데,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발해기지 밖으로 밀려나는 장면까지는 좋았는데, 루나073이 우주복도 없이 맨발로 달 위를 지구에서처럼 뛰어다니는 장면은 정말 '뭐지' 싶었다. SF라고 해서 꼭 모든 걸 과학적 고증에 맞춰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너무 허무맹랑한 상상력만으로 결말을 급히 마무리 지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탑 배우들이 연기하고 배우 정우성이 기획하여 많은 주목을 받고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아 괜찮았는데, 전개상 이야기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진다.

 

image - imdb

 

결말에 대한 혹평 세례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고요의 바다'는 VFX로 달의 환경을 높은 퀄리티의 시각적 결과물로 구현해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뉴스 |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속 우주, 언리얼 엔진으로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대원 중 하나이자 스파이였던 '류태석(이준)'이라는 인물이 극의 전반과 후반에 걸쳐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변화해 반전을 준 것도 재밌었던 요소라고 생각한다.

 

또한 스토리 완성도는 조금 아쉬웠지만, 불모지 장르였던 SF를 한국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좋은 시도였던 것 같다. '고요의 바다'를 시작으로 더 많은 SF 장르의 작품들이 등장하길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고요의 바다'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총 에피소드 8화에 걸쳐 감상할 수 있다.

 

 

고요의 바다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각계 전문가들이 한 팀이 되어 달 탐사선에 오른다. 임무는 폐쇄된 연구기지에서 24시간 안에 중요 샘플을 회수하는 것. 대원들은 비밀에 잠긴 이 위험천만한 기밀 미션을 완수할 수 있을까.

www.netfli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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