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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작품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8년 전 침몰한 세월호를 겹쳐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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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8일 전체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개봉 전부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일단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2009년 네이버에서 연재된 웹툰 원작 <지금 우리 학교는>의 드라마화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시점이었기에 그 기대가 무척 컸던 것 같다. 나 또한 웹툰 원작을 다 보았고, 11년이나 지났음에도 스토리와 구성이 무척 탄탄한 웹툰이었기 때문에 당연 드라마 또한 재밌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해외 시청자들은 아무래도 K-좀비물이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고, 충격적인 비주얼의 티저 영상에도 현혹된 것 같았다. 영화 '부산행'이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을 잇는 한국의 좀비 스릴러가 다짜고짜 학교를 배경으로 하니 신선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지도...

 

 

지금 우리 학교는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좀비 바이러스 발생의 시발점이 된 고등학교. 이곳에 갇힌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염되어 좀비가 될 뿐.

www.netflix.com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All of us are dead)' 포스터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8년 전 세월호를 겹쳐보다

그렇게 기대를 안고 정주행하기 시작한 드라마 지우학은 옛 웹툰을 떠올리게 해 재밌으면서도 자극적이었으며, 동시에 연출상 부족한 점이나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든 생각은 '그동안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는 점이었다. 원작 웹툰부터 드라마 지우학이 나오기까지 11년이라는 긴 세월이 있었고, 그 사이 한국사회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끊임없이 경험해왔다. 한국사회에서 절대로 씻을 수 없는 한 가지 가장 큰 재난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2014년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일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총 12개의 에피소드에 걸쳐 효산고등학교에서 시작된 요나스 바이러스의 확산과 그로 인한 인명 피해를 다룬다. 바이러스의 시작점인 만큼 인명피해가 가장 큰 곳 또한 효산고등학교로,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지는 사이 효산고등학교는 인명 구조 작전에서 가장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여기에는 갖가지 이유가 등장하지만, 학교가 바이러스의 진원지라는 점과 무증상 감염자의 등장으로 군경이 인명 구조를 일시적으로 포기했기 때문이 가장 크다.

 

'이청산'을 연기한 배우 윤찬영은 세월호 사건을 다룬 독립영화 '생일'에서 수호 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효산고등학교는 하나의 거대한 세월호나 다름 없이 된다. 극 중에서는 효산시 전체에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과정을 경찰이나 국회의원, 유튜버, 계엄군 등 다양한 인물의 관점에서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효산시 전체 지도(map)가 실제 경기도 안산시의 그것과 같다고 한다. 안산시는 세월호 침몰로 목숨을 잃은 학생들의 출신 학교인 단원고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효산고의 아이들은 끝내 고립되고 옥상까지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무증상 감염자를 구조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군인들은 학교에 왔다가 이병찬 교수의 노트북만 들고 떠난다. 교실에서 방송실, 음악실에서 옥상, 양궁부 체육관 등으로 아이들은 목숨을 걸고 이동하면서 조금씩 친구들을 잃는다. 아이들을 구하러 오는 어른은 아무도 없고, 학교 안의 어른들은 좀비가 되거나 학생의 목숨(윤귀남)을 담보로 자기 살 궁리만 하는(교장선생님) 경우가 대다수. 최소한의 질서도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무기를 들고 좀비와 싸우고 계급(일진)과 싸우기도 한다. 어른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반면, 온조의 아버지이자 소방관인 남소주가 학교 부지 뒷산을 통해 학교로 들어오는 장면은 세월호에 대한 애도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지점이라 볼 수 있다. 남소주는 자신의 딸이 뒷산을 통해 대피할 것까지 고려하여, 길을 잃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도록 나무 몸통마다 노란 리본을 묶어 둔다. 그렇게 모든 작업을 마치고 학교 부지에 도착한 남소주 소방대원의 앞에 보이는 철조망에 빛이 내리쬐며 찰나의 순간 노란 리본들이 빽빽하게 들어선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다시 돌려 보고 알았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월호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과 남겨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애도 그 자체라는 것을.

 

드라마 지우학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12화를 보다 보면, 더 이상 이 드라마가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온조와 수혁을 포함한 몇 명의 아이들만이 결국 살아남아 군인들을 만나 구조되고, 효산시의 격리 통제시설에서 몇 달을 살고 나온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있다. 좀비는 어느 정도 통제되었지만, 아이들이 있는 시설을 둘러싼 철조망은 아직까지 극 중 한국사회가 효산시 전체를 바이러스로 보고 있다는 걸 가늠케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효산시를 애도하는 리본들이 철조망에 달려 있고, 여기엔 사랑했던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편지가 적혀 있다. 

 

 

사회적 책임과 윤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재난을 다시 보다

넷플릭스 지우학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패닉에 빠질 만큼 커다란 재난이나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발동되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학교에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던 초기, 온조네 담임 선생님은 이 상황을 경찰에 공식적으로 신고하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학교 안의 일은 학교에서 처리하는 게 맞다'며 신고한 교사에게 면박을 준다. 아마 그 시간에 모두 학교 밖으로 대피하라고 했다면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온조의 아버지인 남소주 소방대원과 그 팀이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하자, 보좌관은 국회의원을 1순위로 구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더 빠르게 일반 시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본인의 안위를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학교에 노트북을 가지러 군인들을 보낸 계엄군은 무증상 감염자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멀쩡히 옥상에 살아있는 아이들 9명을 구조하지 않고 빠져나온다. 최소한 식량이나 따뜻한 옷이라도 다시 가져다주었다면, 아이들이 목숨 걸고 체육관으로 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극 중 사람들을 좀비로 만드는 바이러스의 이름은 '요나스' 바이러스이다. 요나스라는 이름의 기원은 극 중에 언급되지 않지만, 독일의 생태주의 철학자 한스 요나스를 연상케 한다. 한스 요나스는 '미래 윤리와 책임'에 관해 이야기한 철학자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기술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이라 말했다. 과학자이자 연구원 출신이었던 교사 이병찬이 만들어 낸 이 괴물 바이러스를 현대의 기술 권력이라 본다면, 요나스 바이러스라는 이름에 담긴 비판적 의미가 조금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요나스가 제안하는 미래 윤리의 5대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미래를 망각하지 말라. 둘째, 두려움을 의무화하라. 셋째, 겸손하라. 넷째, 검소하라. 다섯째, 절제하라.

 

 

요나스의 미래윤리와 책임

현대 기술은 전대미문의 권력을 인간에게 안겨 주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기술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이다. 즉 기술은 윤리와 철학을 필요로 하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권

www.kci.go.kr

 

연기력보다는 전반적인 연출과 대본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드라마 지우학에 대한 호불호는 굉장히 심한 편이다.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나 드라마의 연출이 조악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지우학 감독은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유명한 배우를 기용하기보다는,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연기력 면에서 어느 정도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온조 역을 연기한 박지후 배우나 남라 역의 조이현 배우는 각각 영화 <벌새>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너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배우 개인의 역량도 물론 영향이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연출과 대본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반면, 수혁 역할의 배우 로몬과 빌런 '이나연' 역할의 배우 이유미의 연기는 너무 좋았다. 이처럼 배우들의 고르지 않은 연기 케미(?)가 작품 내 연기력 논란에 더 불씨를 지핀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생일>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수호' 역을 연기한 윤찬영 배우가 지우학에서 청산을 연기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으로 윤찬영 배우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졌다. 더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윤찬영 배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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