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익스클루시브 <징벌> 정주행
얼마 전 왓챠인스타그램 피드에서 흥미로운 콘텐츠가 독점 수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장을 꾹 눌러둔 작품이 있다. 바로 <징벌>이다. 제목만으로도 임팩트가 커 보이는(?) 이 작품은 무려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는 '프랑스 드라마'이다. 최근 왓챠와 넷플릭스를 통해 다양한 문화권과 나라의 콘텐츠가 수입되어 즐거운데, 이스라엘을 주무대로 하는 콘텐츠는 정말 처음이라 기대가 되었다. 물론 무엇보다도 미스터리한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스토리 라인이 마음에 들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목이 그어진 채 죽은 남편
드라마 <징벌>은 프랑스의 스튜디오 카날(CANAL)이 제작했고, 총 6개의 에피소드 1개의 시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에피소드의 개수만 따졌을 때, 그리 장편은 아니다. (내용상 추가 시즌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티저를 통해 공개 된 메인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무서운 편이다. 한 남녀가 결혼을 하는데, 케이크를 컷팅하는 피로연 도중 케이크 칼에 남편의 목이 그어져 죽게 된다. 케이크 칼을 함께 쥐고 있던 신부 '나탈리'는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지만, 정작 나탈리는 아주 슬퍼하지도, 그렇다고 살인사건의 순간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나탈리를 제외하고 뚜렷한 용의자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건을 맡게 된 형사 '제시카'는 나탈리를 포함하여 둘러싼 인물들에게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하면서 수사를 끌고 나간다.
유대교 중심의 문화적/사회적 배경과 다양한 문제들이 결합된 스토리
<징벌>은 프랑스 드라마지만, 스토리 전개는 모두 이스라엘을 무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지점들이 있다. 나탈리의 가족은 프랑스인이지만, 이스라엘에 거주한다. 종교는 유대교 집안이고, 이는 나탈리가 결혼하려 했던 죽은 남편 '에란'의 종교와도 같다. 유대교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자연스럽게(?) 남편의 형제와 부부 관계를 지속하게 된다. <징벌>의 전반부에서 나탈리의 극성스런 엄마 '로자'가 '에란'의 형제 '샤이'에게 찾아가 '할리자 의식(부부관계에 있는 사람이 서로 의절하는 것)'을 치뤄야 한다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이긴 한데, 나탈리가 속한 사회문화적 환경을 고려할 때는 당연한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에 있다가 팔레스타인 구역 '라말라'로 도망친 나탈리의 전남친(!)을 극중 이스라엘 경찰이 포기하는 것도 독특한 지점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상황 안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도망친 범법자는 이스라엘에서 억지로 찾거나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스라엘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여자들이 남편한테 맞아요'라는 형사 제시카의 대사나, '결혼식에서 그렇게 기뻐하면 안 돼, 신부를 보호해야지'라고 말하는 엄마 로자의 대사들로 볼 때 이스라엘 문화권 또는 보수적인 유대교 문화권 안에서 여성이 가진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대략 가늠해볼 수 있다. (물론 엄마 로자가 내뱉는 대사들은 좀 극단적인 게 많긴 하다)
몽환적인 눈을 가진 배우 나디아 테레시키에비츠
드라마 <징벌>에서 단연 빛나는 배우는 '나탈리' 역을 연기한 나디아 테레시키에비츠(Nadia Tereszkiewicz)이다. 나디아 테레시키에비츠는 96년생으로 폴란드-핀란드계 프랑스인이다. 필모그래피 중에는 국내에 잘 알려진 작품은 <징벌>이 유일하다. 나탈리의 슬프고 우울한 표정(특히 눈!)과 알듯말듯 미묘하게 변하는 감정 연기를 매력적으로 소화해냈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디아의 인스타그램 링크)
스포일러 주의! 드라마 <징벌>의 결말 해석
총 6부작으로 이루어진 짧은 드라마 <징벌>의 결말을 두고,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소재나 스토리라인이 보편적이지 않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6부작에 걸쳐 유지하기 위해 감독이 단서처럼 보이는 요소들을 작품 전체에 흩뿌려 놓았기 때문이다. <징벌>을 본 사람들은 드라마의 마지막 회차를 남겨두고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범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실제로 무엇이 복선이고 아닌지를 구분하기 힘들다. 이 부분은 약간 시청률을 위해서 감독이 좀 과하게 양념을 버무려 놓은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드라마 전반부까지는 단순한 스릴러/미스터리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가 후반부로 치닫을수록 오컬트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딸을 어떻게든 결혼을 통해 구원하고 싶은(!) 엄마 로자와 그의 미친 친구(?) 루이자가 끌어들이는 튀니지의 토속 신앙이 스토리의 무게 중심을 가져가면서, 도대체 범인은 누구고 나탈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싶을 정도로 기괴하고 이상하다. 물론 그 기괴함조차도 드라마 <징벌>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영화 '미드소마'가 생각났다)
드라마 <징벌>은 사실 추리물도, 오컬트물도 아니다. 그보다는 심리스릴러에 가까운데, 그 이유는 주인공인 '나탈리'가 인격 장애를 가진 여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드라마를 보는 관객마저도 가스라이팅 당하는 기분일 만큼, 나탈리의 성장 배경은 극단적 보수주의로 점철되어 있다. 여성이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남성과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부정을 타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이는 이스라엘 문화권이 다 그런 건 아니라고 믿고 싶고(...), 나탈리가 속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가정환경이 지닌 극단적 보수주의의 결정체인 엄마 '로자'의 태도와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나탈리는 세 명의 자매 중에서도 특히 자유분방하고 예민한 동시에,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막내로 나오는데, 잘못된 선입견을 지닌 엄마 밑에서 통제 당하며 살았던 여성이라면 충분히 나탈리와 같은 인격 장애를 겪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나탈리의 내면에는 또 다른 남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남성은 나탈리의 원래 인격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어 한다. 이는 드라마 <징벌>의 원제인 Possessions(소유물)과도 연결되며, 죽은 남편인 '에란'과 역시나 죽은(?) 전남친인 '알렉스'의 증언을 통해 극중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사이에 어떤 남자가 있고, 나탈리의 안에 어떤 남성이 나를 괴롭힌다'고. 그 남성은 나탈리도 모르는 사이에(인격이 여러 개로 나뉜 사람은 다른 인격이 등장할 때 기억하지 못한다), 나탈리가 사랑하는 남자들을 지나치게 질투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나탈리의 손을 통해 살인이 저질러지므로, 유력한 용의자는 나탈리를 제외하고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아무튼 나탈리는 남편과 전남친의 죽음에 본의 아니게 휘말리게 되고, 하루 아침에 남편을 죽인 딸의 존재가 또 하나의 '부정적 상징'이라고 생각한 나탈리의 엄마는 딸과는 일말의 상의도 없이, 친구인 루이자가 아는 어떤 사이비 종교인에게 맡겨 버린다. (튀니지의 토속 신앙인 것처럼 나오는데, 정말 이런 일이 있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제르바의 여자애들은 매일 아침 멍든 채 깨어나도 기억을 못해'라는 엄마의 대사는 마치 튀니지의 제르바에서 태어난 여성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운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지만, 사실 이 또한 드라마 전개를 위한 속임수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탈리는 엄마와 루이자의 손에 이끌려, 제르바에서부터 영혼의 짝이었다는 '엘리'와 결혼한다. 주변의 보수적인 어른들로부터 심하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던 나탈리는 일시적으로 엘리와 결혼함으로써 이 상황이 모두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탈리는 새로운 남편이 된 '엘리'를 '에란'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목을 그어 죽이고,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부영사 '카림'이 사랑을 고백하자 복부를 찔러버린다. 이로써 제르바의 여성들에게 한정되는 토속신앙이란 애초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었고, 나탈리 안의 제2의 인격인 '그 남자'가 범인임이 확실해진다. 만약 제르바의 여성들에게만 주어지는 운명이 있었고, 그게 정말 엘리였다면 나탈리는 엘리를 그렇게 쉽게 죽이지 못했을 거니까.
사실 마지막에 엘리를 죽인 혐의로 형사에게 연행되어 떠나는 나탈리는 '진짜 나탈리(여성)'인지, '그 남자'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이 드라마의 마지막 묘미이자, 찜찜함인 것 같다. '코마 상태에 있는 그를 왜 죽였어요?'라는 형사의 말에 '죽을 짓을 했다'고 답하는 나탈리는 과연 어느 쪽인 걸까. 또한, 나탈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쫓아올 의지가 있는 것 같은(?) 프랑스 부영사 '카림'은 왜 죽이지 않고 그저 '복부에 상처를 내는 것'에만 그쳤을까. (카림과 나탈리의 키스신은 좀 어이 없는 전개이긴 하다만, 영화가 결말로 가기 직전까지 제르바 여성들의 저주와 나탈리의 인격 장애 중 무엇이 이 사건의 원인인지 숨기기 위한 극중 장치이었을 거라 생각해본다)
결국 나탈리는 엄마와 루이자가 영혼의 배우자랍시고 강제 결혼 시킨 남편 엘리의 목을 긋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쫓아온 부영사 카림의 복부까지 찔러버리면서(!), 그 누구의 소유물(Possessions)로 남기를 거부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죽일만 했으니까요'라는 마지막 대사를 돌이켜 볼 때, 나탈리 안에 살고 있는 그 남자로부터 아직 소유(Possessions)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한국판 제목인 '징벌'이라는 표현 또한 극중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사실 극중 인물들이 말끝마다 '징벌'이라고 하니, 나탈리 같은 여자, 즉 '마녀'나 '요녀'에게 내려지는 종교적 벌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근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나탈리를 사랑하는 척, 위하는 척 했던 가족들과 연인 관계의 남자들에게 내려지는 벌, 그걸 '징벌'이라고 표현한 것 아닐까? 나탈리 안의 그 남자가 나탈리를 소유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내리는 벌을 의미하는 걸로 보인다. 작품의 제목에 스토리의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 반전 요소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왓챠익스클루시브 드라마 <징벌>, 미스터리나 심리스릴러 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작품성이나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는 복선/맥거핀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지만,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문화권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스토리만으로도 한 번 정주행 해볼 만하다. 다만 문화/종교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으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으니 좀 찾아보고 시청하는 것도 방법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