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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작품들

[스포있음] 왓챠 '스왈로우(Swallow)' 리뷰 : 아름다운 미장센과 세밀한 감정선이 돋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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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왓챠피디아 '스왈로우(2019)'

요즘은 왓챠플레이와 넷플릭스를 모두 이용하고 있는데, 유독 왓챠에서만 독특한 작품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넷플릭스에도 재밌는 작품이 많긴 하지만, 왓챠 익스클루시브로 수입되어 들어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사실 호불호가 갈릴 만한 것들이 꽤 많다. 지난 번에 후기를 작성한 <징벌>도 마찬가지인 사례다. 다만, 1시간 반에서 2시간 남짓한 시간을 투자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다면야 좀 이상한 작품이라도 얼마든지 보고 싶다. 스무살 때 많이 들렀던 예술영화관 '시네마테크'를 이제 왓챠로 경험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주말을 이용해 새롭게 시청한 작품은 '스왈로우(2019)'이다. 간간히 왓챠 피드에서 추천 작품으로 뜨긴 했는데, 그냥 넘겼다가 왓챠 인스타그램에서 소개해주는 콘텐츠를 보고 저장을 꾹 눌러두었다가 마침내 시청했다. 독특하고 결코 보기 편안하지 않은 소재(이식증)를 주제로 하고 있어, 조금 고민을 했는데 용기내어 보았다. 그럼 후기 시작!

 

 

스왈로우(2019) - 왓챠피디아

“이건 내가 유일하게 선택한 거에요” 그림 같은 집, 완벽한 남편, 곧 태어날 아기까지, 남부러운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헌터. 그런 그녀가 욕망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입에 넣어선 안될 것을

pedia.watcha.com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이식증 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스토리는 생각보다 심플하다. 성공한 사업가인 남편과 결혼해 시어머니 말로는 '인생 펴고' 살고 있는 여성 '헌터(헤일리 베넷)'의 관점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딱히 직업도 없이, 수영장이 딸린 넓은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헌터는 어느샌가 우울과 무기력한 감정에 빠져든다. 수영장도 청소해보고, 남편 저녁도 준비하고, 방에 커튼을 뭘로 바꿀까 고민해봐도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매일 저녁 퇴근하는 남편을 강아지처럼 기다리지만, 사업을 물려받은지 얼마 안 된 남편은 일로 바쁘고 헌터의 감정 상태까지 신경 쓰진 않는다. 그러다 임신까지 하게 된 헌터는 온실 속 화초처럼 현모양처가 되길 바라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에게 약간의 가스라이팅까지 당하기 일쑤다.

 

어느 날, 헌터의 눈에 시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에 나온 얼음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손으로 집어 입에 넣고 와그작와그작 씹고는 왠지 모를 쾌감에 빠진 헌터는 이제 입에 다른 걸 넣기 시작한다. 처음엔 유리구슬, 그 다음은 압정, 옷핀, 송곳... 보통 사람은 입에 절대 넣지 않을 그런 물건들을 삼킨다. (이런 장면을 보길 원치 않는 분들에게는 권하지 않는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 왓챠피디아 '스왈로우(2019)'

 

헌터의 이런 행동은 실제로 있는 병이라고 한다. 흡수 가능한 영양분이 없는 물질을 먹는 증상으로 '이식증'이라고 불린다. 보통은 어린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인데, 철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임산부나 심리적으로 불안을 겪는 성인에게서도 나타나는 병이라고 한다. 헌터가 임신을 하고 나서 이상한 물건들을 입에 넣는 것으로 보아, 극중 인과관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심리적으로 극심한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빠진 헌터의 상태와 가장 큰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스왈로우'는 이식증을 앓는 헌터를 그저 미친 사람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토리가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관객은 헌터의 심정에 점차 이입하게 된다. 많은 대사 없이, 무작정 즐겁지도, 그렇다고 소리내어 우는 것도 아닌 것 같은 복잡 미묘한 헌터의 표정만으로도 이식증 환자가 어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지 1시간 30분 남짓한 시간동안 경험할 수 있다. '넌 아무것도 할 줄 모르잖아'라고 말하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둘러싸여,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헌터의 막막한 심정만이 영화 줄거리의 전부일 뿐이지만. 마음의 병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위험한 물건들을 입에 넣는 헌터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선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미장센

헌터가 송곳과 압정, 건전지 등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위험한 물건들을 입에 넣고 삼키는 내내, 헌터를 둘러싼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이 영화는 스토리만 빼놓고 보면, 아름답고 묘하다. 회사 사람이나 가사도우미, 시부모를 제외하고는 들르는 사람도 오고 가는 이웃도 없는 헌터의 집은 그림 같고, 그래서 더욱 갑갑하게 느껴진다. 헌터에게는 평화로운 지옥인 셈이다. 사실 영화적 기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헌터 역할을 맡은 헤일리 베넷의 표정 연기와 어우러지는 미장센이 유독 돋보이는 장면들이 몇몇 있었다.

 

image 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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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나중에 태어날 아기방을 꾸미는 헌터. 넓은 창에 파란색과 빨간색 셀로판지를 붙인다. 빨간색 셀로판지 앞에 선 헌터와 아무것도 붙지 않은 창과 파란색 셀로판지가 붙은 창 앞에 걸쳐 서 있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똑같은 풍경이 이 두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image 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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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의 실수로 넥타이가 망가져 짜증이 난 남편과 그런 남편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헌터. 둘 사이에 옷장으로 묘하게 공간이 분리되면서, 헌터의 우울한 감정 상태는 남편의 영역으로는 절대 침범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은 연출이다. 멍하니 앉아 있던 헌터는 한껏 짜증이 난 남편이 서 있는 옷장 앞까지 다가가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로 뒤돌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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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남편과 헌터가 화면의 구분선 없이 한 프레임에 온전히 잡힐 때는 오히려 헌터의 감정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괜찮아', '미안해', '사랑해' 따위의 말로 남편의 기분에 맞춰 주기 위한 공간으로 그려지는 침실. 정말 헌터의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에는 남편이 부재 중이거나, 묘하게 그어진 구분선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애초에 이 두 사람은 부부이지만, 서로를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한 적 없다는 걸 연출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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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의 투샷과는 매우 대조적인 장면이다. 남편이 없는 사이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주체하지 못한 헌터가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자, 사모님을 따라 침대 밑으로 들어오는 가사도우미 '루아이'. 이 장면을 보면서 괜히 눈물이 났다. 호화롭고 세련된 저택의 모습과는 대비되게, 먼지가 가득한 침대 밑으로 숨어 들어간 헌터를 따라 루아이도 바닥에 엎드린다. 해질녘까지 같이 침대 밑에서 잠이 드는데, 헌터를 하루종일 지켜보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헌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유일한 캐릭터가 루아이였던 것 같다. 이후, 헌터가 집에서 도망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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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헌터가 먹으면 안 되는 물건들을 입에 넣는 장면은 비비드한 배경 컬러가 어우러져 끔찍한 장면인데도, 왠지 매혹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것처럼 연출된다. 헌터라는 인물이 이 물건들을 꼭 입에 넣어야겠다는 참을 수 없는 욕망에 이끌리고 있다는 점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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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지옥에서 빠져나와 소란한 여성의 삶 속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남편과 그 어머니의 협박으로 정신병원에 보내질 뻔한 헌터는 루아이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집에서 도망친다. 이혼도 뭣도 아닌 그야말로 '가출'을 하게 되었지만, 나오고 보니 남편이 헌터 자신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았는지("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잖아.") 제대로 보게 된다. 화단의 흙을 먹으며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헌터는 왠지 모를 충동으로 친어머니의 집이 아닌 어머니를 오래 전에 강간했던 '생물학적 아버지' 어윈의 집에 찾아간다. (사실 제대로 이해되는 부분은 아니었으나, 강간을 당했음에도 어쩔 수없이 자신을 낳았던 어머니 앞에서 꺼내지 못한 마음 속 응어리가 있었나 정도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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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전 헌터의 어머니를 강간했던 어윈은 수감생활을 끝내고 평범한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헌터를 보고 당황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부끄럽게 여겼냐'는 헌터의 질문에 핑계나 어떤 변명 없이 대답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을까 싶다) "나는 예전의 내가 한 짓이 부끄러운 거지, 너의 존재 자체가 부끄러운 건 아니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대답을 들은 헌터는 그길로 산부인과에 찾아가 임신 중절 약을 처방 받는다. 수십 년 전 종교적 이유로 자신을 없애고 싶었지만 없애지 못했던 어머니와는 다르게, 헌터는 자신이 더 이상 원치 않는 모든 일들을 그만 두기로 한다. 평화로운 지옥과도 같았던 저택에서 빠져나와 수많은 여성들 중의 한 존재로 다시 한 번 살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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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 임신 중절 약을 먹고 화장실에서 나온 뒤, 수많은 모습을 한 다른 여성들이 화장실에 오고 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 헌터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화장실에 들른 많은 여성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처럼 헌터의 삶도 그중 하나로 이어질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식증이라는 독특한 질환을 소재로 한 영화 '스왈로우', 헤일리 베넷의 감정 묘사와 아름다운 연출 모두 인상 깊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헌터라는 여성이 스스로를 옥죄었던 삶에서 탈출하여, 또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떠난다는 결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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