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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작품들

영화 '유전' '미드소마' 감독 아리 에스터의 단편영화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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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공포영화나 미스터리/스릴러 스토리를 찾아보는 걸 좋아했다. 구글에 무서운 이야기를 검색해서 찾아본 적도 많고, 지금도 인스타그램으로 호러 스토리 계정을 구독해놓고 틈틈히 보는 편이다. 어릴 때는 영화 관람 연령 제한이 있어서 보고 싶은 작품도 못 봤던 적이 많은데, 어른이 되니 이런 제한 없이 혼자서도 보고 싶은 작품을 다 볼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귀신이나 유령이 나와서 재밌다기 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기묘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너무 스트레스 받을 때는 공포영화만한 게 없긴 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순간 순간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영화관을 가기 힘든 요즘, 유튜브로 가끔씩 단편영화들을 찾아보곤 한다. 유튜브에는 유명한 감독들의 단편영화가 종종 무료로 풀려 있다. 오늘 기록해볼 영화는 국내에서는 '유전', '미드소마'로 잘 알려진 아리 에스터(Ari Aster) 감독의 단편영화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이다.

 

*스포일러가 매우 많으므로, 아래에서 영화를 먼저 보고 리뷰를 읽어보길 바람.

 

위계와 성별을 완전히 뒤바꾼 기묘한 이야기

감사하게도 한글자막을 달아주신 채널이 있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단편영화 '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은 무료로 볼 수 있다.

 

영화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은 30분이 안 되는 분량의 단편작으로, 존슨 집안에 몇 십년에 걸쳐 일어난 기묘한 일을 소재로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기묘한 일이라는 것은... 과연 뭘까?

 

 

영화의 도입부, 아들 '이사이아(Isaiah)'가 자위를 하고 있다. 어떤 사진을 보면서 자위를 하던 아들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아버지에게 들킨다. 아버지 '시드니(Sydney)'는 자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별 일 아니니 스스로를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달래지만, 아버지가 나가고 아들이 들고 있던 사진은 놀랍게도...

 

 

아버지이다. 영화 도입부부터 강렬한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뒤틀린 성적 집착을 다룬 작품이다. 기존의 영화에서는 주로 아버지가 딸에게 성적으로 집착하거나 아들이 어머니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아리 에스터 감독의 이 영화는 완전히 뒤바꿔버렸다고 볼 수 있다. 잘못된 성적 욕망의 해소가 흘러가는 관계도 그 대상이 되는 성별도 완전히 바꾸면서 정말로 '기묘한 일'로 만들었다. 

 

 

또 한 가지 독특한 건 아버지를 성폭행하는 아들을 목격한 어머니의 태도이다. 영화 '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에서는 어머니가 방관자 역할을 맡는다. 남편이 오랫동안 아들의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아내의 모습은 기존의 영화 문법에서 여성이 피해자 역할로 노출되었던 것과 대조적이게 느껴진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 여성의 묵인으로 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은 오랫동안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된다.

 

폐쇄적인 '집'이라는 공간에서 피해자의 공포감을 극대화한 연출

자신이 겪은 일을 자서전 원고에 포함시키려는 아버지
아들이 아버지의 서재로 다가오는 장면은 공포스럽다.

 

어릴 때는 자위가 다였지만, 아들은 장성해서 결혼하고 나서도 아버지를 끊임없이 성폭행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사는 아버지는 자신이 쓰는 자서전 원고에 아들과의 일을 써서 세상에 공개하려 한다. 하지만 한 집에 사는 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깜깜한 서재에 혼자 타이핑을 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오는 소리에 저장도 못하고 컴퓨터를 끄느라 허둥지둥한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놀라운 연출은 30분도 안 되는 짧은 단편영화에서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특히 집이라는 공간이 지닌 따뜻한 이미지와 폐쇄적인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장면들이 눈에 띈다. 아버지의 서재는 컴퓨터 화면 하나만 켜놓은 채 깜깜하지만, 문 밖 복도는 은은한 노란빛 조명이 감도는 따뜻한 분위기이다. 그리고 늘 카메라의 시선은 약속이나 한 듯 활짝 열린 문을 향해 있다. 이는 오랫동안 성폭력에 시달린 피해자의 두려운 감정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연출로 보인다. 특히 아들로 보이는 그림자가 밝은 복도에 그림자로 나타날 때면, 영화를 보는 관객도 덩달아 긴장된다. 단순히 실루엣만 공개되었을 뿐인데도, 오히려 아들이 직접 나타나는 장면보다 긴장감이 올라간다. 성폭력 피해자의 답답하고 공포스러운 심정을 잘 보여준 장면이다.

 

재수 없는 아들... 가스라이팅 잘 한다.

 

또한 앞서 언급한 이 '문'이라는 소재도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아버지가 글을 쓰거나 방에 혼자 있을 때, 문은 늘 열려 있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문을 꼭 열어놓으라'고 지시했기 때문인데, 영화의 중반부에 아버지가 욕실에서 샤워를 하느라 문을 잠가놓은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문을 잠가둔 아버지는 욕조에 앉아 음악을 듣다가, 문을 부수고 들어온 아들에게 또 다시 성폭행을 당한다. 아들은 문을 잠가 놓은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본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미친 아들놈...

 

그러던 아버지가 자신이 작성한 자서전 원고를 들고 1층에 내려와 밖으로 나가려다, 아들에게 들킨다. 이때 아들이 하는 말은 가관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가는 유일한 장면이 바로 자서전 원고를 들고 나갈 때라는 점이다. 아마 원고를 통해 세상에 자신이 당한 일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아들의 이어지는 가스라이팅을 피해 달려나가던 아버지는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는다.

 

성폭력 가해자가 주로 하는 말을 아들이 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나 뭐라나...

 

그런데 문을 열고 달려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 아들의 말을 듣다 참지 못한 아버지가 빠르게 달려나가는 장면을 뒤로 하고, 아들의 어린 시절이 담긴 액자로 카메라가 옮겨갈 뿐. 이는 아들의 그늘을 아버지가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암시하는 걸까? 아버지가 얼른 도망쳤으면 하는 관객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연출이다. 결국 영화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문을 박차고 나간 아버지는 싸늘한 죽음을 맞이하여 아들의 그늘로부터 벗어난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사그라들고, 가해자와 방관자만 남은 집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뤄지고, 평생을 방관만 했던 어머니는 뭔가 각성한 듯(?) 아들을 찾아온다.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징그러운 이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소유욕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가 생전에 입던 니트를 입어보며 거울 앞에 서 있다. 그때 어두운 방과 대조되게 밝은 문 앞에 어머니가 서 있는다. 이는 왠지 존슨 가문의 위계가 이제 아버지와 아들에서,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로 넘어간 듯 보인다. 아버지의 시점으로 느낄 수 있었던 긴장감은 이제 아들의 시점으로 옮겨갔다.

 

 

아들의 소행을 오래 전 알고 있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이 아들 이사이아 때문임을 꼬집는다. 아들은 기분 나빠하며 잡아 떼다가 뺨을 때린 어머니에게 대항하며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어머니는 화로에 자신을 집어 넣으려던 아들의 눈을 쇠꼬챙이로 찔러버린다. 분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는 아들을 자기 손으로 직접 잔인하게 살해하고, 아들이 갖고 있던 아버지의 자서전 원고는 화로에 넣어 태워버린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은 한 가정 안에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를 집어 넣어 놓고 이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압력을 가하고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다. 여기서 기존의 영화 문법이 고수했던 성별과 위계 클리셰를 완전히 뒤바꿈으로써, 사실은 가족 구성원 간 성폭력이 얼마나 참혹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지 제목 그대로 '기묘하면서도' 끔찍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영화 '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 또한 가해자와 방관자만이 남은 현실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결국 알려지지 못한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으면서, 현실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지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과 집에 대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독특한 관점

영화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은 아리 에스터 감독이 영화 '유전'이나 '미드소마'를 만들기 훨씬 오래 전에 낸 단편으로 2011년 공개되었다. 집과 가족에 대한 감독만의 독특한 시각이 이 단편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관객평에는 "'유전'이나 '미드소마'를 보면 아리 에스터 감독이 단순히 오컬트 장르만 고수한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그건 단순히 소재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라는 댓글도 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과거에 가족과 관련된 어떤 사건이 있었고 거기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있어, 이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한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 있다. 영화 '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을 보면 그런 감독의 관심사가 유독 잘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감독의 2018년작 '유전'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이나 '미드소마'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아리 에스터 감독의 이전 단편작들도 한 번 시청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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