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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작품들

강박증 환자의 하루를 담은 단편영화 'BEAU' 리뷰 (feat. 아리 에스터 감독의 차기 장편작 Beau Is Afr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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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아리 에스터 감독의 단편영화들만 찾아보고 있다. 영화 '유전'을 재밌게 보긴 했는데, 아리 에스터 감독이 단편으로 풀어내는 작품들 또한 이렇게 매력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오늘 본 작품은 2011년에 나온 아리 에스터 감독의 단편영화 'BEAU'이다.

 

한글자막을 달아주신 채널에 감사드린다. 자막이 있어서 좋은 작품을 잘 이해하게 된다.

 

강박증 환자의 하루를 담은 초단편영화 'BEAU'

영화 'BEAU'는 러닝타임 6분으로 단편 중에서도 매우 짧은 분량이다. 이야기는 역시 심플하다. BEAU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집을 나서려고 문을 잠그는 와중에 잊고 온 물건이 생각나, 문고리에 열쇠를 걸어놓고 2층에 다녀온 사이 열쇠가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작은 동심원을 그림으로써, 묘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리 에스터 감독만의 매력이 역시나 잘 드러난 작품이다.

 

'존슨 가문의 기묘한 일'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맞다.
열쇠랑 짐가방을 누가 훔쳐갔다.

 

복도에 걸어가는 사람에게 '누가 내 열쇠 가져가는 걸 보셨냐'라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욕설 뿐이다. 당황스러운 주인공 BEAU는 일정을 취소하고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출발하겠다고 말한다. 누군가 열쇠와 짐가방을 가져갔는데 그냥 집을 떠날 수가 없다면서.

 

참고로 이 남자는 아리 에스터다. 주인공에게 x될 거라고 암시 주는 건가?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BEAU는 문앞에 종을 달고, 열쇠와 가방을 훔쳐간 범인이 다시 집에 찾아올 때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한밤 중에 잠에 들지 못한 채, 1층 문이 있는 곳으로 가위를 들고 내려온 BEAU는 아예 1층 바닥 문앞에 몸을 뉘이기로 한다. 결국 한숨도 잠에 들지 못한 채,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한 주인공은 열쇠집에 전화를 하지만... 돌아오는 건 왠지 모를 욕설 뿐이다. 119에 전화를 걸어 본인의 상황을 얘기해봐도 마찬가지. 왜 자꾸 사람들은 BEAU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는 걸까?

 

열쇠집에 전화했는데 난감쓰.
구급대원마저도... 욕하지 마세요...

 

사실 주인공 BEAU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BEAU는 심각한 강박증을 안고 사는 사람인 건 분명해 보인다. 열쇠와 가방을 도난 당하는 일은 당화스럽고 무서운 일이기는 하지만, BEAU가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문앞에 종을 달아두던 주인공은 후반부로 가면서 두려움이 심해져 당길 수 있는 칼을 설치해둔다. 하지만 이마저도 베란다를 통해 괴한이 침입하는 상상을 하면 소용 없는 일. 더군다나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꾸만 욕을 하고 위협적인 말을 내뱉는 사람들은 다 뭘까?

 

영화 'BEAU'에 대한 해석은 별로 찾아보지 못했지만, 나로서는 BEAU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 생각했다.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이 아무도 없는데 나한테 누군가 욕을 하거나 험담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쇠와 가방을 도난당해 집밖을 나설 수도 집안에 편히 몸을 뉘일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공손하게 도움을 청하는 주인공에게 모든 사람들이 사연은 듣자마자 욕을 한다. 다소 과장된 장면 묘사로 보아, 이 모든 상황이 어떤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BEAU의 상상 속 두려움과 결합된 것은 아닐까 싶다.

 

BEAU의 강박증세와 과장된 두려움의 근원은 어머니?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BEAU의 어머니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직접 BEAU 앞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아들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 같은 어머니의 수화기 너머 모습은 사람의 행색이 아니다. 짐승처럼 갈색 털이 수북한 손과 검고 굵은 손톱이 보이고,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한 손으로는 이상한 풀떼기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당최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없게 묘사하고 있는 이 영화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이후 작품인 '유전'이나 '미드소마'처럼 자식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서의 어머니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가 실제로 괴물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BEAU가 생각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결코 정상적인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는 않으니 이렇게 묘사된 것.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과 달리, 전화를 받으면서도 크게 미동하지 않는 어머니의 태도를 보면... 주인공의 과장된 감정들이 가족관계에서 기인한 건 아닐지, 추정해볼 수 있다.

 

 

초단편영화 BEAU는 이렇게 알쏭달쏭하고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이야기만을 남긴 채 끝난다.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은 채 끝나버려서 아쉬우면서도 어리둥절한데, 다행히도(?)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 'Beau is Afraid'가 장편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주연 배우는 메릴 스트립과 호아킨 피닉스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마도 기존의 어머니 역을 메릴 스트립이, 아들 역을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지 않을까 싶다.

 

P.S. 주인공 BEAU는 프랑스어로 '보'라고 읽는다. 프랑스어로는 '아름다운' '잘생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는 영어 Beautiful과도 이어진다. 그래서 영화 제목을 '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읽든 간에, 주인공의 성격이나 상황과는 굉장히 대조되는 이름이긴 하다. 그래서 더 아이러니한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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