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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작품들

아리 에스터 감독 무성영화 '뮌하우젠(Munchausen)' 리뷰 : 자식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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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서 아리 에스터 감독이 영화 '유전'을 만들기 훨씬 전에 냈던 단편영화 '존슨 가문의 기묘한 일'을 리뷰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영화 '유전'과 '미드소마'로 알려지기 전부터 다수의 단편작을 낸 적이 있다. 오늘 리뷰할 영화 '뮌하우젠(Munchausen)'은 2013년에 나온 단편작으로 대사 없이 전개되는 무성영화이다.

 

 

영화 '유전' '미드소마' 감독 아리 에스터의 단편영화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존슨 집안의

어릴 때부터 공포영화나 미스터리/스릴러 스토리를 찾아보는 걸 좋아했다. 구글에 무서운 이야기를 검색해서 찾아본 적도 많고, 지금도 인스타그램으로 호러 스토리 계정을 구독해놓고 틈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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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은 16분 가량으로 매우 짧은 편이고, 원래 대사가 없어 자막도 필요 없다. 가볍게 한 번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The Trouble With Mom - 'Munchausen'

 

자식에 대한 사랑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장성한 아들이 대학생활을 위해 집을 떠나는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아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엄마가 기쁘면서도 아쉽고 근심스런 마음을 숨기지 못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들이 집을 떠난 뒤, 공허함을 감출 수 없는 엄마. 

 

 

엄마의 공허한 마음은 모른 채, 대학 생활에 충실한 아들. 수업에서도 모범생이고, 토론 동아리에도 열심이다. 

 

 

그러다 예쁜 여자친구도 생기고, 둘은 관계를 발전 시켜 결혼을 약속한다. 

 

 

 

아들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진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와중에, 엄마는 집에서 남편과 함께 어두컴컴하게 앉아있다. 아들이 떠난 집은 빛이 들지 않고, 외로운 아내의 마음도 모른 채 남편은 코골고 있다.

 

 

갑자기 장면이 다시 전환되고, 대학교 입학 며칠 전 짐을 싸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으로 돌아온다. 꿈 같은 대학생활과 여자친구와의 연애, 공허하게 홀로 남은 엄마 자신의 모습은 모두 한 순간의 상상이었던 것. 아직 아들은 집을 떠나지도 않았다.

 

 

아들이 떠날 날이 3일도 남지 않은 상황, 엄마는 무언가에 홀린 듯 부엌으로 가서 샌드위치를 만든다. 그리고 그 샌드위치에 넣는 것은...

 

 

아무래도 먹어서는 안 되는 물질 같다. 자세히 보면 'TOXIC(독극물)'이라 쓰여 있다. 아들이 아프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게 샌드위치에 독극물을 몇 방울 떨어뜨려 완성한 접시를 들고 아들 앞에 선 엄마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주려던 샌드위치를 숨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모르는 아들은 밝은 얼굴로 샌드위치를 뺏어가 한입 물고는 맛있다는 제스처를 보낸다.

 

 

결국 아들은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 앓아눕게 되고, 이런 아들을 바라보며 엄마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안도하는 듯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이제야 아들이 내 품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으로 부푼 마음을 가득 안고 있던 아들은 결국 원인을 모를 병으로 한 달 가까이를 앓아 누워있다가 생을 마감한다. 엄마가 자신에게 독극물을 먹였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대사가 없지만, 인물의 표정과 감정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뮌하우젠(Munchausen)'은 무성영화로, 작중 인물들의 대사가 없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사가 아닌 표정과 행동으로 모든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되도록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이 놀라울 뿐이다. 등장인물의 생각하는 내용 뿐만 아니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사건이 발생하고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등을 모두 카메라의 무빙으로 보여준다.

 

아들이 대학교 입학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표시하고 있는 달력
아들이 죽기 직전, 달력은 이미 대학교 입학일을 훨씬 지나 있다.

 

엄마가 정성껏 가꿔놓은 정원은 아들이 죽고 난 뒤, 아무도 돌보지 않아 모두 시들어 버렸다. 아들이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만이 쓸쓸하게 남아있을 뿐.

 

아들이 죽고 난 뒤 화단을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으로 병을 꾸며내는 뮌하우젠 증후군

영화 제목 '뮌하우젠'은 뮌하우젠 증후군에서 딴 것이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정신 질환의 일종으로, 대표적인 증상은 타인의 관심과 동정을 끌기 위해 있지도 않거나 자신이 만들어낸 질병으로 계속 병원을 찾아다니는 행동이다. 대리인이나 부모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도 종종 발생하는데, 흔히 아이의 엄마가 아이가 아파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의학백과사전 서울대학교 병원 참고). 

 

 

영화 '뮌하우젠(Munchausen)'의 엄마가 위의 경우에 해당할 것인데, 문제는 장성한 아들을 하루 아침에 진짜 환자로 만들어 죽게 두었다는 점이다. 처음에 이 영화의 제목이 뮌하우젠 증후군의 '뮌하우젠'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여기서 뮌하우젠 증후군의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딱 짚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영화 '뮌하우젠'의 엄마는 표면적으로는 아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 아들을 환자로 만들지만, 실제로 망상을 겪는 사람은 엄마 본인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는 아들이 아프게 되었지만, 아들과 떨어졌을 때 스스로의 모습이 얼마나 공허하고 외로우며 우울한지를 상상하며 그녀 스스로를 머릿속에서 환자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 '뮌하우젠'의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쨌든 영화 '뮌하우젠'은 자식에 대한 잘못된 사랑이 자식에게 말 그대로 '독(Toxic)'이 될 수 있다는 걸 시각적으로 잘 그려낸 작품이다. 뭐든지 넘치면 없느니만 못하다는데, 자식을 소유하려 생각하는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이 이 영화를 한 번쯤은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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