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모두 공유하는 또 다른 나(The other self)?
외모 강박을 다루지만 사실은 '존중 받지 못한 자아'에 관한 이야기
충격적인 이미지의 연속으로 강한 정신력이 아니면 관람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악명 높은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고 왔다. 평소 기묘하고 이상한 스토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라면 피곤해도 꼭 보는 편이라, 서브스턴스는 놓치면 안 될 것 같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골든글로브에서 만 62세의 나이로 처음 여우주연상을 타게 된 배우 '데미 무어(Demi Moore)'의 수상 소감 영상을 보고, 이 배우에 대해서도 무척 궁금해지던 차였다.
여성의 몸에 대한 미디어의 노골적인 시선을 기괴한 공상 과학 소재로 비판하는 영화 '서브스턴스'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적는다.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많다는 점 참고하길 바란다.
0. 나이 50이 넘으면 미디어에서 '끝나버리는' 여성들
줄거리는 젊은 시절 할리우드 탑스타로 활약하던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이 오십 대를 통과하며 시작한다. 한 때 아름답다고 칭송 받던 엘리자베스를 방송가에서 찾는 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오랜 시간 출연하던 에어로빅 방송에서도 물러난다. 방송국 사장은 30살 이하의 더 어리고 생기 있는 여성을 찾는다는 공고를 올린다. 이에 감정적으로 동요하던 엘리자베스는 교통 사고 후 진찰 받던 병원에서 이상한 젊은 남성에게 '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라는 이름이 적힌 USB를 받고 집에서 틀어본다. 그 내용은 노화된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던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 버린다. '더 나은 버전의 나(Better version of me)'를 주사 한 번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약은 엘리자베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온다. 엘리자베스가 구매한 약은 엘리자베스의 몸(아마도 세포)을 2개로 분리해 '더 젊고 예쁜 새로운 나'를 정말 물리적으로 태어나게 만든다(이 과정이 시각적으로 징그럽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또 다른 나'와 7일 간격으로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나눠써야 한다. 예외는 없다. 7일이라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넘기면, 몸에 통제할 수 없이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 그런데 젊고 예쁜 새로운 나로 태어난 '수(배우 마거릿 퀄리)'가 기존의 엘리자베스가 밀려난 방송에 오디션을 보고 신예 모델로 활동해 성공하게 되고, 거기서부터 모든 끔찍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여담으로 '서브스턴스'의 감독 '코랄리 파르자'는 1976년생으로 만 48세의 프랑스인 여성이다. 이전에 '리벤지'라는 영화를 통해 주목을 받았고 이후 '서브스턴스'가 나왔다. 코랄리 파르자는 본인도 50대를 앞뒀고, 미디어에 50대를 넘긴 시니어 여성이 어느 순간 사라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며 이번 각본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었고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방송에 나타나지(Representation) 못하는 여성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메이킹 필름을 보면 '서브스턴스'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기괴한 장면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도 볼 수 있다.)
1. 공허하고 외로운 엘리자베스의 내면을 상징하는 '집'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집착과 개인의 공허를 잔인하고 기괴한 상상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정말 관객으로서도 난이도가 높은 작품이다. 인간의 몸에 약물을 주입하고, 이상한 변이가 일어나고, 서서히 모든 것이 파괴되는 과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모두 무언가의 비유이자 상징이라 생각하면 이야기를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실제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이 영화의 모든 건 '상징(Symbolism)'이라 말하기도 했다.)
첫 번째로 눈에 보였던 상징 중 하나는 엘리자베스이자 수의 '집'이었다. 이 집은 거실에 굉장히 큰 통창이 있다. 오랜 시간 탑스타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을 엘리자베스가 살 법한 집이지만, 이 펜트하우스에는 누가 함께 살지 않는다. 오직 엘리자베스 혹은 서브스턴스를 통해 태어난 수가 함께 사용하고, 종종 수가 만나는 남자들이 집에 잠깐씩 드나들 뿐이다.
이 집은 사실상 엘리자베스의 내면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내면(집)은 엘리자베스라는 사람의 심리적 변화를 투영하며 끔찍하게 변한다. 초반에는 커다란 엘리자베스의 프로필 사진이 거실 중앙에 떡 하니 있었다면, 수가 등장하며 이 사진을 치워버린다(심지어는 화장실에 문을 달아 비밀의 공간을 만들고, 엘리자베스를 그 안으로 치워버린다). 7일마다 혹은 더 긴 시간을 잠들어 있다 깨어난 엘리자베스는 더 흉측하게 변해가는 본인의 몸을 비관하며 점차 집안을 쓰레기통으로 만든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규칙을 깨는 수의 행동에 대해 서브스턴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 불평할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다. '기억하세요 당신은 하나입니다(Remember, You ar One).'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서브스턴스 회사가 반복해서 엘리자베스에게 주입하는 이 대사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사실은 엘리자베스의 내면, 자아와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커다란 유리창은 어쩌면 엘리자베스가 세상을 보는 눈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층의 좋은 집에 사는 것으로 유추되는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보이는 건 사람들이 아닌 광고 전광판에 관능적인 표정과 몸매로 누워있는 수의 모습이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예 보이지 않고 다른 집이나 도로는 풍경 정도로 보일 뿐, 낮이나 밤이나 이 광고판의 시선만 느껴질 뿐이다. 이는 미디어가 만들고 편집한 시각적 이미지에 자기도 모르게 집착하고, 그 시선에 다시 갇혀버린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흔히 '너 자신을 사랑해야 돼', '너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야 돼', '가장 먼저 나를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와 같은 말을 당연스레 권하는 사회이나, 이를 실천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어떤 계기로든 스스로를 혐오하는 시간에 빠져 오랫동안 고통 받기도 하니까. 영화 '서브스턴스'는 "만약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물리적으로 떼어내 실제로 존재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를 기괴한 표현 방식으로 실현한 작품이다. 단순히 이중인격이나 다중인격으로 한 몸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내가 아닌, 내 시간과 공간까지 공유하며 나를 혐오하고 무시하는 나의 다른 자아를 세상에 꺼내버린다면... 결국 엘리자베스의 집은 각기 다른 '나'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하고, 공격하고, 결국에는 죽이기까지 하는 자기 혐오의 공간이 된다.
2. 뒤바뀐 원형(엘리자베스)과 복제품(수) 간의 우위
영화 '서브스턴스'는 이전의 SF 영화에서 자주 다뤄졌던 '클론(Clone)'이라는 소재와 닮아 있다. 원형이 되는 인간이 있고, 인간을 따라잡을 목적(처음에는 선한 의도)으로 태어난 복제품 클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꽤나 익숙하다. '서브스턴스'도 마찬가지로 원형인 엘리자베스와 복제품인 수의 관계로 이해하면, 엘리자베스가 하는 모든 고민들이 모순적이라는 걸 쉽게 깨닫는다. 원형이 복제품을 시기하고 본인의 존재를 지우고 싶어하며, 나아가 복제품에 결과적으로 기생하는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서브스턴스에서 핵심이 된다 생각했던 인상적인 장면들이다.
장면 1 - "스스로를 아껴주세요."
엘리자베스와 수가 방송 프로그램을 마치며 공통적으로 치는 대사가 있다. 바로 '다시 만날 때까지 스스로를 아껴주세요(In the meantime, take care of yourself)'인데, 정작 그렇게 말하고 촬영장 문을 밀고 나오는 엘리자베스 또는 수의 모습이 밝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수많은 팬을 거느릴 만큼 타인에게 멋진 몸을 가꾸는 일의 가치와 기쁨을 설파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아껴주기는 커녕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지 못하고,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이 대조적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장면 2 - "7일이 참 길죠? 나 자신이 아직도 의미 있다는 것이..."
처음에 서브스턴스 USB를 건낸 청년의 원형(노인)이 엘리자베스를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치는 대사이다. 수가 처음으로 규칙을 깨고 약속된 7일이 아닌 8일을 활동하며, 엘리자베스는 오른 쪽 검지손가락부터 시작해 눈에 띄게 갑자기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관한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를 먼저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한 노인으로부터 "(늙어버린 모습의) 나 자신이 아직도 의미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엘리자베스는 재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린다. 수가 더 왕성하게 활동하며 사회의 주목을 받을수록 늙고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더 가리고 집안으로 숨어들려는 엘리자베스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복제품(수)의 원형(엘리자베스)이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회의하고 심란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면 3 - Terminate 주사로 수를 죽이려다가 수십 번 고민하는 엘리자베스
계속해서 규칙을 깬 수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급속 노화한다. 볼품 없고 흉측하기까지 한 본인의 모습이 너무 고통스럽고 신체적으로도 약해져 이제 더 물러설 곳이 없어진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 '완전히 끝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를 죽이더라도 이제까지의 변화는 감수하고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선택지는 엘리자베스에게 많은 고민으로 다가오고, 결국 수를 죽이려다가 다시 살리는 선택을 한다. 원형인 엘리자베스만이 완전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복제품이었던 수 없이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젊고 아름다운 수가 없다면 엘리자베스로서의 삶도 가치를 잃어버린 것.
장면 4 - 엘리자베스를 죽이고 궁지에 몰린 수의 선택으로 태어난 '몬스트로 엘리자수'
정말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본인의 원형을 죽인 수는 엘리자베스로부터 척수액(에너지원)을 공급 받지 못해 점차 신체가 망가져간다. 방송국에서 가장 중요한 쇼의 메인으로 들어갈 몇 시간을 앞두고 수는 결국 엘리자베스가 쓰고 남긴 서브스턴스를 본인 몸에 주입해 '더 나은 버전의 수'를 만들기 위해 시도한다. 하지만 예외 없이 버려져야 했던 약물을 복제품이 사용하면서, 전혀 아름답지 않은 흉측한 괴물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태어난다. 재밌는 건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본인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것. 흉측하지만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나의 탄생이다. 이는 실제로는 아름다웠지만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던 엘리자베스, 수의 모습와 대조된다.
3. 여성의 외모를 노골적으로 지켜보는 미디어의 시선들
영화 '서브스턴스'는 잔인한 장면도 많지만, 촬영 기법이나 미장센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이기도 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노골적인 카메라의 시선
서브스턴스 약물의 시작을 암시하는 듯한 영화의 첫 장면, 노른자 실험 장면부터 상실감을 느끼는 엘리자베스가 목욕하는 장면은 모두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카메라 슛으로 일관된다. 수가 참여한 오디션 관계자들이 수에게 질문하는 장면이나 방송국 사장의 기분 나쁜 표정들은 모두 화면을 꽉 채우면서도 관객을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내려다보는 느낌을 자아낸다. 여성의 몸을 인격체가 아닌 상품처럼 바라보는 미디어의 비뚤어진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다.
미디어에 대한 개인의 분노
엘리자베스가 잠든 사이 수가 토크쇼에 나가 한 이야기에 열 받아 텔레비전에 음식을 던지고 화를 내는 엘리자베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누군가에 대해 화가 났다면 그 사람(화장실에 잠들어 있는 수)에게 직접 가서 화를 내고 때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엘리자베스는 토크쇼 화면에 대고 분노를 표출한다. 어쩌면 여성을 상품으로만 보던 미디어와 노골적인 사회적 시선에 대한 개인의 저항감을 표현한 장면 아닐까 생각되었다. 또 다른 내가 한 말에 내가 다니 상처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가해자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소외되는 건 개인인 '나'임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외에도 카메라가 인물들의 얼굴이나 몸을 지나치게 클로즈업하는 장면들은 실제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의도했고,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엘리자베스나 수의 불안한 심리를 인물의 빠른 걸음걸이를 불안정하게 따라가는 카메라 화면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4. 서브스턴스 결말 : 가해자에 대한 저항이 아닌 자기 파멸로 끝난 게 아쉽다
결말이 가장 보기 힘들다. 러닝타임 1시간을 남겨 놓고 보다가 나왔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만큼, 영화 '서브스턴스'가 내린 결말은 잔인하고 기괴하다. 잔인함을 차치하더라도 개인적으로 '과했다' 싶은 결말이다. 왜냐하면 엘리자베스의 복제품인 수는 어차피 원본 없이 살아갈 수 없어 신체가 망가지고 있었고, 수를 망가뜨리는 장면으로 막을 내렸어도 충분히 이야기가 전달됐을 것 같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반전에 반전을 주면서 충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감독의 의도도 이해는 된다. 특히, 궁지에 몰린 수가 또 다시 엘리자베스와 같은 선택을 한다는 설정은 이야기의 전개 상 충분히 납득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는 사실 엘리자베스도 수도 아닌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파괴적 이야기로 막을 내린 건 다소 아쉽다. 모든 걸 인과응보 서사로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수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엘리자베스를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 같은 것들은 충격적이긴 하나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분노의 에너지로 자기를 파괴했다면, 예를 들어 그 다음은 방송국 사장에게도 화살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비이성적인 선택으로 태어난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긍정하며 몸 한 쪽에는 수의 얼굴이 붙어 있는 요상한 모습이다. 사람이 아니라 근육 덩어리를 뭉친 것 같은 이 괴물이 사실은 결과적으로 자아를 상징한다면, 자아는 참으로 끔찍한 것이구나 싶다. 나도 인정하기 싫고 때로는 괴물 같기도 한 또 다른 내면을 갖고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고 정신적으로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요소 별로 재밌는 포인트가 무척 많아 감독의 전작 '리벤지'도 보고 싶어졌다. 또한 데미 무어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인터뷰도 틈틈히 찾아 보며, 영화를 여러 각도로 이해하는 시간도 보내고 있다. 데미 무어를 비롯해 헐리우드 배우들의 잔잔한 뒷이야기를 궁금하다면 아래 Roundtable 영상도 추천한다.
영화 서브스턴스 : 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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